본문 바로가기

영화 이야기/다시보는 영화

[프레스티지] 가끔은 모르는 게 나을 때도 있다

 적막한 교실 한 가운데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눈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다. 무언가를 무척 기대하는 눈빛으로. 아이들의 눈이 고정된 그곳엔 우쭐한 표정을 한 아이 하나가 거드름을 피우며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들의 함성. "와!" "어떻게 했어?" "다시 한번!" 교실은 한층 더 시끄러워진다. 그 후 얼마간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군림한다. 점심시간이면 그의 주위엔 맛있는 반찬을 싸온 아이들이 모여 있고 하굣길엔 분식점에서 늘 떡볶이를 입에 물고 있다. 다른 아이들은 집에 돌아와 생각한다. 그가 보여준 신기한 마술의 비법은 뭘까. 어떻게 하는 걸까? 며칠간 그에게 잘 보이면 알려주겠지. 내일은 좀 더 들뜬 마음에 등굣길이 가볍다.

  얼마 후 그 교실 아이들은 이미 그 마술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신기해하지 않는다. 뜬금없이 그 마술을 다른 친구들에게 보여주려도 하지 않는다. 괜히 보여줘 봤자 다 알고 있는 마술이기 때문에 무슨 비난을 받을지 모른다. 그토록 신기했던 그 마술은 아이들에게 잊힌 지 오래다.



프레스티지의 전개는 마치 마술과도 같다. 앤지어와 보든. 이 두 라이벌 마술사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주며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앤지어가 보든의 일기장을 훔쳐 읽는 것처럼, 반대로 보든이 앤지어의 일기장을 읽는 것과 같은 두근거림으로 영화는 교묘하게 결말을 보여줄 듯 말 듯 관객과의 줄타기를 이어간다.

  보든의 순간이동 마술은 21세기에선 전혀 먹혀들지 않는 구닥다리 마술이지만, 그때 그들에겐 충격과도 마술이었을 것이다. 아내를 죽인 장본인이 자신보다 더 나은 마술 실력까지 지녔으니 앤지어가 그를 증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앤지어는 보든의 순간이동 마술의 비밀을 알기 위해 뭐든지 한다. 동시에 영화 도입부 장면이 겹친다.

 

"여러분은 그 비밀을 알아낼 수 없습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 속길 원하기 때문이죠."

 

  어쩌면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의 마음이 그러했을지도 모르겠다. 보든의 마술. 그리고 앤지어가 이뤄낸 기가 막힌 반전을 보려고 짧지 않은 러닝타임을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끝은 허무하다. 보든의 마술은 평범했고 앤지어의 반전은 모순투성이다. 좀 더 강력한 결말을 원하던 관객들의 표정은 이내 일그러진다. 그리고 이것마저도 놀란 감독이 의도한 모습은 아니었을까. 좀 더 충격적인 장면을 기대하고 좀 더 놀라운 반전에 열광하는 이들에게 선사하는 가장 멋진 결말. 그것은 '실망'

  비약일지도 모르겠으나 그동안 우리는 너무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결말만을 원해왔던 건 사실이다. 그 영화의 내용이 어떠했든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읽어보려 하지 않고 그저 결말 그 하나만으로 작품을 평가하려하고 마술 같은 결말에 속길 원하지 않았나. 프레스티지의 진정한 마법은 결말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과정과 이야기에 있는 게 아닐까. (10/07/29)